
장재형목사는 사도 바울의 로마 투옥을 떠올릴 때 흔히 박해의 고난만을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기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울의 압송 과정은 단순한 탄압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체계적인 법적 절차를 거친 한 시민의 이동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방대한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정교한 법망을 갖추고 있었으며, 바울은 자신의 로마 시민권을 활용해 감정적 대립 대신 법적 통로를 통해 복음을 변호했습니다. 장재형(올리벳대학교 설립) 목사는 이러한 법적·역사적 배경을 빌립보서를 깊이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제시합니다. 감옥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오히려 선교의 전초기지로 변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울이 이 합법적 지평 위에서 복음의 지평을 넓혔기 때문입니다.
고난을 선교의 기회로 바꾼 실천적 신앙
로마법상 바울의 구금은 무조건적인 격리가 아니라 재판을 기다리는 일종의 연금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비록 몸은 매여 있었으나 방문객을 맞이하고 서신을 통해 교회들을 돌보는 목회적 사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가 ‘옥중서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절망 대신 기쁨과 확신으로 가득 찬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쇠사슬이 복음의 전파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로마의 고위 관료와 경비병들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접점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장재형 목사는 여기서 상황에 지배당하지 않고 상황을 신앙으로 재구성하는 초대 교회의 역동적인 영성을 읽어냅니다.
빌립보 교회: 복음 안에서 맺어진 깊은 우정(Koinonia)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유럽 선교가 시작된 첫 열매로, 사도와 매우 특별한 유대감을 가졌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선교사와 후원자의 관계를 넘어선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생명을 공유하는 파트너십이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로마에 갇힌 바울을 위해 재정을 모으고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하는 등 위험을 무릅쓴 헌신을 보였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러한 헌신을 ‘사랑이 제도화되기 이전의 순수한 생명력’이라 설명합니다. 이들의 나눔은 도덕적 의무감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작하신 ‘착한 일’에 기쁘게 참여하는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장재형 목사는 교리와 실천을 분리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깊이 깨달은 공동체는 반드시 삶의 양식이 변하며, 그것이 공동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세워지는 공동체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를 사모한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의 존재 방식을 삶의 문법으로 삼았다는 선언입니다. 빌립보서 2장의 ‘그리스도 찬가’는 구원론인 동시에 공동체의 윤리적 토대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 교회의 헌신이 바로 이 ‘그리스도의 낮아짐’을 체화한 결과라고 봅니다. 이웃을 돕는 것을 하나의 프로젝트로 여기지 않고, 예수의 마음을 품는 삶의 습관으로 삼았기에 그들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현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은혜의 경제’와 환대
빌립보 교회의 헌신은 로마와 마게도냐 사이의 험난한 거리를 극복한 ‘사랑의 리스크’였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바울에게 헌금을 전달한 사건은, 복음적 교제가 안전지대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장재형 목사는 이를 세상의 교환가치와 대비되는 ‘은혜의 경제’라고 부릅니다. 대가를 바라는 거래가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을 내어주는 선물과 감사의 순환이 공동체를 살리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로마 시민권을 진실을 규명하고 공동체를 보호하는 도구로 사용했듯, 장재형 목사는 신앙인이 현실의 제도와 언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현실 도피적 영성’과 ‘세속적 현실주의’를 모두 넘어서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기쁨과 사랑으로 맺는 의의 열매
결국 빌립보서가 말하는 사랑은 무분별한 감정이 아니라 진리 위에서 분별력을 갖춘 ‘의의 열매’입니다. 장재형 목사는 초대 교회의 사랑과 헌신이 오늘날 우리에게 박물관의 유물이 아닌, 살아있는 영적 문법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이 겪는 고립과 불안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서로의 짐을 나누는 코이노니아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공동체의 사명으로 옮겨놓는 결단이 있을 때, 복음은 다시금 세상을 향한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장재형 목사가 조명한 빌립보서의 영성은,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은혜로 시작된 이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생명의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