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목사, 베드로의 부인과 회복의 영성

장재형 목사는 요한복음 18장을 통해 베드로의 실패와 통곡, 그리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신앙의 핵심 구조로 해석한다.

이 본문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두려움과 진리의 긴장을 담고 있다. 예수께서는 권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지만, 베드로는 같은 장소에서 자신을 숨기며 흔들렸다. 장 목사는 이를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신자가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겪는 영적 시련의 패턴으로 읽어낸다. 신앙이란 고백과 행동이 일치하기를 요구받는 순간, 우리는 종종 “나는 아니라”는 말로 중심을 잃는다.

그 밤의 분위기를 지배한 것은 새벽의 냉기보다 더 깊은 긴장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공기처럼 날카롭고, 질문 하나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시험했다. 예수의 답변은 논리적 당위와 공정한 판단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였지만, 진리를 거부하는 체계는 증거가 아닌 폭력으로 대응했다. 진리는 힘이 아니라 인내로 견뎌야 하는 싸움임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뜰 밖의 불빛은 베드로에게 은신처가 되어야 했지만, 오히려 그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조명 역할을 했다. 따뜻함은 잠시 안심을 주었으나, 그 불빛이 드러낸 것은 베드로의 정체였다. 장 목사는 이 지점을 통해, 인간이 편안함을 붙잡을수록 영적 중심이 흔들리고, 결국 자신조차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나는 아니라”는 문장은 도망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잠시 삭제하려는 시도다.

베드로는 용기 없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칼을 들 정도의 결단은 있었지만, 오래 버티는 힘이 부족했다. 신앙의 시련은 대개 거창한 싸움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질문 속에서 이탈이 시작된다. “너도 그의 제자 아니냐?”라는 물음은 본질적 소속을 묻는 요청이었지만, 베드로는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 목사는 많은 신자가 바로 이 일상적 질문에서 자신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신앙의 현장은 빛이 양심을 드러내는 자리다. 어둠은 편안하지만 멈춘 곳이며, 빛은 불편하지만 회복의 출발선이다. 빛 앞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 순간이 바로 방향을 재정립할 때라고 장 목사는 강조한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수록 상황은 더 좁혀졌고, 결국 닭 울음이 새벽의 분기점을 정의했다. 닭의 울음은 실패의 마침표가 아니라 전환의 신호였다. 장 목사에 따르면 신앙의 싸움은 한순간의 열정보다 끝까지 남아 있는 끈기가 결정한다. 닭이 울기 전에 멈추는 사람은 많지만, 그 시간을 통과한 자가 변화한다.

주님은 베드로의 무너짐을 알고도 그를 위해 기도하셨고, 실패 이후의 역할까지 미리 말씀하셨다. 회개의 시작은 인간의 결심이 아니라, 잊어버렸던 말씀이 다시 들리는 순간이다. 베드로의 눈물은 자기파괴가 아니라 항복의 신호였다. 그는 실패로 끝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랑과 사명을 다시 붙들었다.

요한복음 21장의 숯불 앞에서 베드로는 다시 묻는다. 그 불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지만, 이제는 무너짐의 자리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무대로 바뀐다. 사도행전에서 그가 담대하게 복음을 외친 것은 성격이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회복의 은혜가 그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장 목사는 베드로의 일생을 통해 신앙은 실수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빛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이 핵심임을 강조한다. 넘어짐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은혜로 들어가는 문턱이며, 빛 앞에서 숨지 않고 한 걸음 내딛는 순간 회복은 시작된다. 결국 “닭이 울기 전”의 시간은 파멸의 벽이 아니라 성숙의 관문이며, 그 관문을 통과한 자만이 어둠을 지나 새벽을 증언하는 사람이 된다.

프레이즈오브갓

davidja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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